오늘도 제일 먼저 외출 준비를 마치고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방안엔 마르지 않은 빨래들이 와이어에 주렁주렁 걸려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손빨래를 해보리... .

잠시 어제의 일기를 다시 읽고 생각한건데, 내가 이번 여행에서 큰 감동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혼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좋은 것을 누릴 때면 항상 같이 있었기에 두 배로 감동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혼자라서 외롭기만 한 것이다.
그 차이는 크다.
우리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고 유사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같고 서로에게 많은 조언도 해준다.
때문에 하나를 보아도 두 배의 가치를 찾았고 두 배의 감동을 누렸으며 두 배의 교훈을 얻곤 했다.
지금의 난 혼자다.
외로움과의 전쟁을 치루느라 하나를 봐도 반밖에 못보고 있는 바보다.
한때는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정처없이 배회하던 사람이었지만 이미 둘이 된 지금의 나에게 L+요원이 없는 상태는 반쪽짜리란 얘기다.
채 '하나'가 되지 못한 '반쪽'이라니... .
큰소리치고 떠나온 여행이니 마음껏 즐겨야 하는데 이 무슨 한심한 짓인가.


기대이상으로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꼴마행 기차에 올랐다.
안개 자욱한 밀밭은 대부분 수확기가 끝나 허허벌판이었다.
30분만에 도착한 꼴마에서 처음으로 받은 인상은 '부촌'이라는 것.
중심가로 바로 가지 않고 약간 멀리 돌아다니다보니 으리으리한 저택이 주루룩 있었다.
어마어마한 대저택을 둘러싸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으며, 보는 내내 '귀족이 사나'싶었다.
프랑소와즈 3세라든가 앙뜨와네트 12세, 폰 그레험 앙리(응?) 7세 같은 이름들이 떠오른다;;;
조용하고 낙엽이 떨어지는 꼴마는 이렇듯 진정 귀족적인 분위기였다.


(꼴마 기차역에 비치된 가이드맵. 3개국어로 준비되어 있다.)




(정원을 둘러싼 벽이 끝도없이 이어진다.
아, 글쎄, 그 넓은 정원에 으리으리한 집이 한 채 밖에 없더라니깐;)

넋 놓고 걷다가 길을 잃어서 무식한 방법이지만 지나가는 차를 세워 물었는데, 르몽드여사님(역시 내가 지은 이름-_-)께선 차에서 내려 직접 안내해주시는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으셨다.
무척 친절하고 아름다우신 마담 르몽드! 당신의 미소를 잊지 못할거에요!
(매번 느끼는거지만, 파리를 벗어나면 모든 프랑스인이 친절하다. 아참, 파리에서의 지미는 빼고!)
기분이 정말 좋았다.
안개가 걷히지 않아 시야는 짧았지만 상쾌한 꼴마의 공기 덕분에 답답하지 않았다.
가족들과 전화 통화까지 해서 발걸음도 가벼웠고, 드디어, 외롭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이제 정말로, 정말로 이번 여행을 즐기자.
여행지를 보는 거 말고 여행하는 시간을 즐기자.
외로우면 전화하고 전화못하면 외로운 시간을 즐기자.
그래, 이왕 온 거 잘 즐겨야지!

꼴마 탐사는 르몽드여사님께서 알려주신 길에서 시작되었다.
스트라스부르의 축소형이랄까.
아주 조금 더 지방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고 아주 조금 더 낡았다.
아주아주 작은 규모라서 가이드맵이 너무 크다고 느낄 정도. 덕분에 지도가 자세해서 보기엔 좋았다.


(르몽드여사님이 알려주신 저 아래 32번부터 시작! 56번은 꼴마 기차역이다.)








(32번 건물인 이것의 이름은 워터타워. 처음 봤을 땐 라푼젤 스토리(당연히 영화 '그림형제' 속의 마녀버전!)를 떠올렸지만
이름을 알고나니 그저 상수도 시설이 있을 것 같아 허무해졌다;)








(스트라스부르보다 소박하고 아담한 건물들이 주루룩. 골목골목이 참 예쁘다.)




(꼴마에서 제일 오래되고 유명한 집. 내노라하는 가문들이 이 저택에서 줄줄이 살았단다.)























여전히 회전목마가 있고 공원이 있고 오래된 성당이 있다.
성당은 스트라스부르의 그것에 비하면 정말 작은, 그저 아담한 수준의 것으로 오히려 그래서 꼴마와 어울렸다.
가장 인상깊은 것을 꼽으라면 하나같이 친절한 사람들과 골목 곳곳에 숨겨진 옛모습들이다.
꼴마는 아기자기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여행지다.


(유명한 크리스마스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 으...아까워라, 정말 이쁘겠다!)

우리는 꼴마 반나절, 리버빌리 반나절을 계획했는데 버스를 못타서 리버벌리에 가지 못했다.
버스 정류장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도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가르쳐주려고 무척 노력하던 정말 친절한 사람들!)
결국 인포메이션에 찾아가 물어봤는데, 아뿔싸! 인터넷 정보가 잘못된 것이다.
일행이 바로 앞 인포메이션은 우리가 원하는 버스 안내가 없는 것 같다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실수였다.
혹시나 해서 들어갔더니 친절한 까뜨린느(-_-)가 어찌나 자세히 설명해주던지, 진작 들어가서 물어볼걸 그랬다.
(인포메이션에 물어보는 것을 겁내지 맙시다!)
우리가 타야 했던 06번 버스는 눈앞에서 떠난지 오래였다.
중간 타임 버스는 휴가 기간이라 운행하지 않는대고 남아있는 저녁 버스를 타면 돌아올 수 없기에 포기해야 했다.
우린 리버빌리를 포기한 대신 그 돈을 모아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오랜만에 푸짐하게 먹으니 행복하다.
역시 먹을 건 먹어주어야 여행의 질도 높아지는 법!


(알자스 와인가도 안내와 버스 타임 테이블. 와인가도 안내는 화장실에서 기부금을 내고 받은 것.)

일찍 스트라스부르로 돌아와 한 바퀴 더 돌아보았다.
토요일이라 사람도 많고 중고서적 장터도 열리고 거리의 음악가도 많다.
오르골 연주 할아버지, 바이올린과 아코디언 합주의 두 남자,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켈트족(;)까지.
그 중 클래식을 연주한 두 남자가 최고였다.
특히 아코디언 연주가 일품이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연주라서 처음엔 오케스트라가 있는 줄 알았을 정도다.
CD를 사고 싶었으나 연주가 멈추지 않아 돌아선 것이 아쉽다.
거리의 음악은 늘 거리에서만 살아있기에 그 한계가 매력이자 아쉬움인 것 같다.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 7시도 안되었다.
일행들과의 담소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또 다시 하루가 저물고 있다.
좀 더 많이 생각하고 마음도 달래는 여행이 되어야겠다.


오늘의 지출 : 바게뜨 샌드위치 3유로, 점심 만찬(닭고기와 샐러드) 8.50유로
인포메이션 지하 화장실 0.50유로
(원래 무료인데 기부금으로 그냥 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다음을 기약하는 의미로 한 번씩 내곤 한다.)


참고 : 꼴마
스트라스부르에서 기차를 타고 바로 갈 수 있습니다. (30분 소요)
꼴마행 기차가 있는게 아니라 큰도시행 기차의 경유지이므로 기차역 노란 타임 테이블에서 어디행 기차를 탈지 잘 확인하셔야 합니다.
걸어서 구경하기 딱 좋은 아담한 마을이지만 구석구석 안쪽으로 이쁜 곳들이 많으니 모험심(?)을 가지고 천천히 살펴보시길 바래요.


참고 : 알자스 와인 가도
스트라스부르에서 꼴마 아래로 한참 이어지는 길을 말합니다.
길을 따라 포토밭이 이어져서 '와인 가도'라는 명칭이 붙었지요.
와인 가도를 따라 형성된 마을이 워낙 많기 때문에 딱히 어디가 제일 유명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보통 리버빌리, 라크위르, 휘나위르 정도를 방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와인 가도에 포함된 마을 모두가 대표지나 다름없습니다.
주로 꼴마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되는데요, 당연하겠지만 차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군요.
꼴마 인포메이션에서 확실한 가이드를 받으신 후 도전해보세요.
저의 여행 목적에는 와인 가도가 없었기에 둘러보지 못했지만, 와인 가도 자체가 목적이시라면 일찍 서두르셔서 2~3군데 마을을 둘러보시는 것도 좋겠어요.
와인 시음을 할 수 있다니 한 잔씩만 마셔도...으흣~ 잊지 못할 추억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와인 가도에 포함된 마을은 101개나 있습니다.


참고 : 버스타고 리버벌리 가기



위 이미지는 꼴마에서 리버빌리로 가는 버스의 타임 테이블입니다.
현재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에 의하면 꼴마에서 106번 버스를 타라고 되어 있는데요, 아닙니다! (T_T)
꼴마에서 운행하는 버스 라인이 1번부터 3번까지 있는데, 그 중 '1번 라인의 06번 버스'를 타야하는 것입니다.
정류장은 인포메이션 바로 앞에 있는데 메인 정류장이 아닐 수 있으니 정확한 위치는 인포메이션에 물어보시길 바래요.
왼쪽 타임 테이블에서 볼펜으로 지워진 시간은 휴가 기간이라 운행하지 않는 버스입니다.
수시로 변경되니 인포메이션을 통해 꼭 확인하세요.
낮 12시 10분 버스를 타서 17시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딱 좋았을텐데...흑...T_T




작성자 : toytreesp
작성일 : 20061120

2006/11/20 23:24 2006/11/20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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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로 떠나는 날.
이틀 동안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일행들을 위해 천천히 이동하기로 했다.
오전 10시 45분 기차가 있다니 그걸 탈 생각이다.
느긋하게 일어나 편안하게 짐을 싼다.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6시경에 일어나 메신져로 L+요원과 얘기를 나눴다.
나에겐 공기, 비타민, 햇빛과 같은 사람.


(타임 테이블이 암만 많아도...)


(직접 확인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45분이 아니라 43분 기차였다. 재확인의 중요성!)

여유있게 민박을 나와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지미의 말대로 휴가 기간이라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다.
모든 좌석이 예약 상태!
좌석마다 붙여진 노란 예약 종이를 보고 좌석에 대한 미련을 버린 우리는 처음으로 입석으로 기차를 타게 되었다.
일찍 포기한 덕분에 연결 통로의 제법 여유있는 공간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4시간 동안 입구 앞에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차창 밖을 구경했다.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길은 렌으로 향하는 길과는 또 달랐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산이 있는 것에 놀랬을 정도.
늘 평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진 않은가보다. 하긴 이쪽은 스위스나 독일과 가까우니... .







4시간 후 도착한 스트라스부르에서 미리 인쇄해온 숙소를 찾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나의 실수로 한참 전에 내려버려서 목표 지점까지 걸어간 것도 미안했는데,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니 중심가와 너무 멀어 난감했다.
점심도 못먹은 상태라 일행들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와 그냥 중심가의 호텔을 물색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돌아오면서 바라본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 제 2의 수도라 불릴만한 큰 도시였다.
파리와 비슷한 규모와 분위기를 가졌지만 더 깨끗하고 조용하다.
한눈에 비싼 도시라는 느낌이 든달까.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온 우리는 호텔 문 앞에 붙여진 가격표를 보며 고르다가 4인실인데 5인이 머무는걸 허용하겠다는 호텔로 결정했다.
인원이 많아서 얻는 장점 중 하나는 '뭉치면 싸다'는 것.
이만한 호텔에 2일 동안 지내는 비용이 1인당 27.60유로다. 아싸!
관광지에서 바로 숙박할 수 있으니 훨씬 여유로워 좋기만 하다.

짐을 풀고 돌아본 스트라스부르는 한눈에 독일과 프랑스가 공존하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묘하게 섞인 양국의 건물들이 어색하지 않았고 이런 모습을 처음 본 일행들이 무척 즐거워해서 루트를 정한 보람을 느꼈다.
나는-나는 물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처음 독일에서 받은 감동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스트라스부르를 가로지르는 수로는 분명 낭만적인 요소였고 처음으로 관광지의 야경을 편히 감상할 수 있어 좋았지만, 결코 큰 감동은 얻지 못했다.
유럽 여행 세 번째. 그래서인가-하고 계속 생각해본다.
더 이상 신기하지 않은가? 완전히 색다른 무엇이 아니면 이제 식상해진 것일까?
이 낭만적인 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있는 나는 해답을 찾기 위해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수로를 따라 운행하는 유람선. 수동으로 문을 열어준다.)


























(알자스 전통 베이킹 그릇. 눈에 익다~)


(스트라스부르의 대표 건물인 노트르담 성당. 규모는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의 3분의 1정도.
대신 붉은 색이라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있다.
공사중이라 정면을 찍지 못한 슬픈 사연이... .
)








(꼭 하나쯤 있는 시계. 이 시계도 30분마다 허무한 액션과 함께 울리지만, 그 옛날 이만한 크기의 정확한 시계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듯 싶다.
지금이야 허무한 액션이지만 당시엔 블록버스터급 시계가 아니었을까?)


(지금은 레스토랑이라는 제일 오래된 건물)











해가 지고 야경도 본 우리는 과일과 맥주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나는 당연히 청포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이 청포도를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로텐부르크에서 혼자 다 먹어버린 청포도를 떠올리며 열심히 먹었다.

이제 자야지.
내일은 꼴마르와 리버빌리다.
별로 감동받지 못한 오늘에 대해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오늘의 지출 : 스트라스부르 호텔 숙박료 2일 27.60유로(4인실을 5인이 사용하여 n등분)
스트라스부르 버스 편도 1.30유로, 생수 1유로, 청포도 1kg 2.30유로, 맥주 캔 0.9유로


참고 : 스트라스부르
파리 동역에서 기차를 타면 낭시를 거쳐 스트라스부르까지 바로 갑니다. (4시간 소요)
동역이 현재 공사중이라 많이 복잡하더라구요. 플랫폼 번호 뜨고 대규모로 이동하는데 살짝 무섭기도 했습니다. ^^;
스트라스부르역도 공사중입니다. 2007년에 TGV가 개통되기 때문인데요, 곳곳에 TGV개통을 축하하는 포스터가 붙여져있습니다.
스트라스부르역에서 나오면 역앞 광장도 공사중인데, 그 너머에 보이는 아이비스호텔 뒤쪽으로 중심가가 있으니 숙소는 그 부근으로 잡으세요.
사실 유스 호스텔을 한 번도 못봤기 때문에 호텔을 이용해야 하는 모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골목골목 잘 뒤지면 저렴한 호텔들 찾으실 수 있어요.
트램이 다니지만 중심가만 본다면 걷기에도 충분합니다. 
 

참고 : 스트라스부르, 프랑스 제 2의 수도
프랑스 대표 와인 생산지인 알자스 지방에 위치한 대표 도시.
알자스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된 지역이기도 하다.
유럽의 두 번째 <수도>로서 연합 의회, 유럽 의회, 유럽 인권위원회, 유럽 과학 재단이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매우 알자스적인 건축물들로 알자스의 강한 정체성을 보여주며, Petite France(작은 프랑스) 구역은 더욱 그러하다.
또한 유명한 고딕 성당인 노트르담 성당이나 유명한 장군의 계획에 따라 군인 건축가가 1690년에 건축한 놀라운 보방 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에는 알자스(즉, 프랑스)와 독일이 라인강을 사이에 끼고 둘로 나뉘어 있지만 이 두 나라 간에 경계선은 여러 차례에 걸쳐 바뀌었다.
20세기 동안 무려 17번이나 통치권이 왔다갔다했을 정도.
하지만 전통을 고수하는 땅(아직도 이 지방에 가면 알자스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다.)이라 특유의 색채가 변하는 법은 없었다.
무엇보다 음식문화가 발달했고 요리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양배추를 절여 만든 슈크르트 Choucroute, 껍질이 딱딱한 프와그라 Foie gras en croute, 케익의 일종인 쿠글로프 Kouglopf까지...이와 함께 알자스산 포도주를 곁들이면 최상이다.
사실 알자스 지방에서는 도시나 마을 어디를 가든지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는 산업이 얼마나 부흥했었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특히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나 꼴마Colmar는 포도주 테마 여행 코스(일명 와인 가도) Route des vins가 시작되는 도시이다.
보쥬산맥 Vosages 기슭으로 펼쳐져 있는 유명한 포도재배지 뿐만 아니라 고풍스런 성과 알록달록한 전통 가옥들의 마을들을 감상할 수 있다.


참고 :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대해
알퐁스 도데의 단편 소설 '마지막 수업'은 독일 치하의 작은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진행되는 프랑스어 수업을 보여줍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땅으로 굳어진 알자스로렌지방이 프러시아(프랑스와 독일) 전쟁으로 독일에 귀속되는 시점을 보여준 것이지요.
"아멜 선생님은 프랑스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명확하며 가장 확실한 언어라고 말씀하시며,
그 말을 우리들이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한 국민이 노예로 전락해도 자기 나라의 말만 잘 간직하고 있으면
그것은 마치 자신의 감옥 열쇠를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이나 같기 때문이라고…"
모국어를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애국심이 강조된 내용인데, 어쨌든 이유도 모르고 눈물을 흘리며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런데 웹서핑을 해본 결과 소설은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자스 지방은 역사적으로 독일과 프랑스가 번갈아 지배했던 지역이다보니 두 나라 문화에 가까웠고, 오히려 게르만 민족에 가까운 사람들이라 독일과 더 친숙하다는군요.
알자스 특유의 언어도 독일어에 가깝다고 합니다.
때문에 프랑스어를 못하게 되어 눈물을 흘리는 소설 속 분위기는 말 그대로 소설에나 존재하는 것이었죠.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이었습니다.
봉건 정치 속 독일과 비교했을 때 프랑스혁명이 주장하는 자유, 평등, 박애 사상은 알자스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알자스 사람들은 프랑스를 '선택'한 것입니다.
독일에 의해 자신들이 선택한 프랑스를 따르지 못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 소설 속에서처럼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은 아니었다는 게 현실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알고나니...세상을 살아가기엔 나 자신이 너무 순진했구나 싶습니다. -_-





작성자 : toytreesp
작성일 : 20061120

 
2006/11/20 19:42 2006/11/20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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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0분.
곧 쌩 말로를 향해 나가야 한다.
컨디션도 좋고 마음도 편안하다.
어제처럼 제일 먼저 일어나 외출 준비를 마쳤다.
일행이 많다보니 준비하는 데에 시간이 걸려서 나는 괜히 부지런한 척을 했다.
쌩 말로로 가는 기차는 TGV라서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데, 어제 못했기 때문에 일찍 나가서 당일 예매를 할 예정이다.

비수기라서 가능하리라 믿은건데 막상 와보니 몽빠르나스역 창구 직원이 좌석 다 찼다고 안된단다.
난감해하던 중 '파리의 천사'를 만났으니, 그의 이름은 지미.(본명이다!)
창구에 줄을 섰을 때 어디서 왔냐고 나에게 묻던 흑인 아저씨로, 낯선 남자를 경계하라는 L+요원의 교육을 받은 나는 간단하게만 대답하고 경계를 풀지 않았다.
하지만 TGV예약을 못해 난처해하는 우리를 보던 지미는 무슨 일이냐, 왜 예약을 못했냐고 물으며 선뜻 도와주는 것이다.
창구 직원이 말하길 좌석이 다 차서 예약이 불가능하다더라고 지미에게 말했고,
지미는 대충 일을 마치려는 창구 직원에게 우리를 대신해 이것저것 물어봐주었다.
유창한 불어 질문이 쏟아지자 그제서야 직원은 무언가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가능한 방법이 있었을테지만 하나만 봐주고 우리를 돌려보내려 했던 것이다.
결국 (렌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렸다가 기차를 갈아타야 하지만)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예약을 마쳤다.
지미의 말에 의하면 지금이 프랑스의 휴가 기간이란다.
휴가하면 여름이나 연말만 생각하던 우리로선 당연히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거듭 "멕씨!"를 연발했다.
지미는 즐거워하며 펜을 꺼내더니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겠단다.
놀랍게도 그는 한글로 '지미'라고 쓰는 것이 아닌가!
그는 자신이 88올림픽 때 태권도 선수로서 한국에 머물렀고 지금은 사범이라고 했다.
"앞차귀~요옵차귀~디잇차귀~"를 연발하며 우리를 감동시킨 지미.
처음으로 파리에서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해준 지미가 나는 정말 고맙다.
고마워요, 지미! 메일 보낼께요!


(유레일 패스는 사용 전에 반드시 기차역 직원의 개시 도장을 받아야 한다!
날짜 기입은 일행이 도맡아 했는데 원래 본인이 해야한다.)


(파리→렌, 렌→쌩 말로행 TGV예약 티켓)







지미 덕분에 애써 찾아갈 수 있었던 쌩 말로는 요트 축제가 한창이라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방송국에서도 오고 사진 작가들도 오고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축제였다. (다음날 아침 뉴스에 계속 방송되기도!)
성벽으로 둘러싸인 내부는 완전 관광지였다.
명품 상점만 즐비한 쌩말로에 나는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해적의 도시에서 몽 쌩 미셀의 고요를 기대한건 무리였지만 그 좁은 길에 그렇게 많은 차가 다닐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해변으로 나가기 전까지 걸어가면서 내내 차가 오는지 돌아봐야해서 짜증이 났다.
아-관광지는 싫다. 이런 건 아니야... .


(쌩 말로로 들어가는 입구)







해변에서의 쌩 말로는 다행히 감동적이었다.
브르딴뉴의 모래사장을 걷다니...정말이지 난,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복을 누릴까.
걸으면서 온갖 상상을 했다.
캡틴 잭 스패로우, 해적, 노략질 그리고 낭만... .
즐거웠다.
샤토 브리앙의 묘를 봤을 때도, 사진을 찍을 때도, 짠내 가득한 바닷내를 맡으면서도 즐거웠다.










(이곳을 배경으로 찍은 영화가 있다던데...여전히 주연 배우를 추모하는 장미가 놓이고 있다.)






(바다는 내가 지킨다!)


(썰물때만 드러나는 길. 저 너머 언덕에 샤토 브리앙의 묘가 있다.)

'바다소리와 파도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듣지 않겠다.'
                                              -샤토 브리앙의 비문에서-



시인 샤토브리앙이 태어난
성곽 마을
바다는 저만치
에메랄드빛이다
성벽 어디에 지금도
해적(海賊) 후예가 숨어 있을 것만 같은

팔려온 노예와 사랑에 빠지는
왜 그 있지, <해적> 2인무 바로 그 무대
                                      ― 시인 김영태의 <브르타뉴 지방 여행-생말로> 전문









우리의 만찬은 쌩 말로의 대표 음식인 크레페.
크레페하면 일본에서 건너온 생크림과 과일 가득한 디저트를 떠올리게 되지만 이곳 크레페는 좀 더 메인요리에 가깝다.
우리는 세 종류의 크레페와 뮬, 빵과 음료가 포함된 MENU(당연하겠지만 우리가 말하는 메뉴판이 아니다;)를 주문했다.
처음으로 나온 크레페는 버터만 발라진 짭쪼름한 맛, 두 번째 크레페는 계란이 얹어진 담백한 맛, 세 번째는 벨기에에서도 먹었던 뮬인데 좀 더 짰고
네 번째 크레페는 진한 초콜릿이 발라진 달콤한 맛이었다.
보기보다는 만족스러운 맛이었고 서버들도 무척 친절해서 먹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한참을 해적의 낭만에 빠져 즐거워하다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모녀가 함께 온 일행도 있었는데 그들을 보다가 엄마 생각이 나서 순간 울컥 했다.
엄마.
내 어머니.
그들처럼 나도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났어야 했는데... .
한 번도 그러지 못한 철없던 시절이 후회되었고 이번에도 그러지 못한 불효에 가슴이 미어졌다.
왜 자식들은 부모 곁을 떠난 뒤에야 불효를 깨닫는 것일까.
그래서 내리 사랑인건가.
부모님이 주시는 사랑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젊은 사람들을 욕했지만 나도 결국 똑같은 바보다.
이런저런 생각들...그때부터 나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파리로 돌아와 잠이 들 때까지 내내 울먹여야 했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울 때 안아주는 남편도 없다.
마음이 아프고 아주 많이 외롭다.

일찍 자버려야지... .



오늘의 지출 : 파리→렌&렌→쌩말로 왕복 TGV 예약 6유로,
크레페가 있는 특선 MENU 11.50유로, 샌드위치 2.50유로, 자판기 커피 1유로


참고 : 쌩 말로(TGV예약비 편도 3유로)
파리 몽빠르나스역에서 TGV를 타고 렌으로 갑니다.(2시간 소요)
미리 TGV예약을 해야 하니 타임 테이블을 잘 확인하고 왕복으로 예약해두세요.
렌에서 쌩 말로행 기차로 갈아탑니다.(1시간 소요)
쌩 말로역에서 밖으로 나오면 주차장이 있는 넓은 공터가 있는데, 그곳을 가로질러 15~20분 가량 걸으면 쌩 말로 입구에 도착합니다.
버스가 있지만 멀지 않으니 걸어가시길 권해요.
돌아올 때도 같은 방법인데, 쌩 말로에서 렌으로 오는 기차는 예약이 가능하지만 좌석 번호가 없으니 예약 표시 없는 좌석에 그냥 앉으세요.
 


참고 : 쌩 말로=해적의 도시
파리에서 서쪽으로 379km 떨어진 '랑스 Rance'강 하구의 화강암 반에 자리잡은 성채도시이며 브르딴뉴Bretagne지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15세기 이후 해상 탐험으로 수많은 해상과 해적을 배출하였다.
16-18세기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 중 하나로 프랑스 왕으로부터 공식적인 허가를 받은 해적이 적국의 배로부터 물건을 약탈했고,
그들의 후예들은 “프랑스 사람도, 브르따뉴 사람도 아니고 오직, 쌩 말로 사람이다 Ni francais ni Breton, mais Malouin suis”라며 자랑스러워한다고.
캐나다를 1534년 정복하고 프랑스령으로 만든 해적 ‘까르띠에 Jacques Cartier’, ‘쒸르꾸프 Robert Surcouf’, ‘뒤게 투루엥 Dugay-Trouin’이 악명높은 해적이었단다.
17세기에 최고로 번창하여 1686년에는 항구에 정박한 거함이 수백 척에 이르는 등 프랑스 최고의 항구였으나,
해적으로부터 가장 피해를 입은 영국이 1693년과 1695년 두 차례에 걸쳐 침공하여 해적을 소탕하면서 무역(해적질?)이 퇴보하였다.
대표 음식은 크레페!


참고 : 브르딴뉴(브르타뉴)Bretagne 지방
프랑스에는 브리타니라는 지방이 없다. Bretagne(브르딴뉴) 지방이다.
이 곳은 뱃사람들의 고장일 뿐만 아니라 바다의 신 넵튠의 후손으로 불리고 있다.
깡깔에서 쌩 나제르까지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해안에는 장미빛 화강암 같은 특이한 암석들이 이어져
모르이방의 목가적인 해안까지 놀라운 요철의 변화를 준다.
브레아, 바쯔, 우에쌍, 벨 일 같은 크고 작은 섬들은 시간 밖으로의 세계로 여행객들을 안내한다.
약간 소란하고 활기찬 항구들은 많은 매력을 지내고 있다.
방어공사 후 쌩 말로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을 위한 성벽이 만들어졌다.
전쟁 후에 정성스레 재건된 구시가의 높은 곳에 위치한 주거지들의 매력은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내륙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브르타뉴 지방의 해산물과 갑각류를 맛보는 것은 미식가들에게 좋은 맛 기행이 될 것이다.


참고 : 샤토 브리앙
프랑스 낭만파의 선구적 작가. 생말로 출생.
1791년 도미하였으나 루이 16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반혁명군에 가담한 뒤,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혁명시론(1797)》을 발표했다.
1800년 프랑스로 돌아와먼저 《아탈라(1801)》을 출판하였고
계속하여《아탈라》와 《르네》가 포함된 《그리스도교 정수(精髓, 1802)》로 <그리스도교의 아름다움>을 <개종자>의 감동으로 묘사하여 세상의 호응을 얻고
나폴레옹에게 인정받아 로마대사관의 서기관이 되었다.
또 《르네》는 낭만파청년의 원형이라고 하여, 다음 세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1804년 앙갱공(公)의 처형으로 나폴레옹과 대립하였으나, 1830년까지 정치생활을 계속했다.
1811년 아카데미 프랑세스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순교자들(1809)》의 집필을 위한 동방 여행을 한 뒤 《파리 예루살람 기행》을 출판했다.
1814년에 《보나가르트와 부르봉왕가에 대하여》로 나폴레옹을 공격했다.
트라피스트수도회의 개혁자를 그린 《랑세의 생애(1844)》,
자신의 생애와 그 시대를 <기억의 마법>과 재치 있는 문체로 재구성하여 M. 프루스트가 높이 평가한 《무덤 저쪽의 회상(1848∼50)》을 남겼다.
<근대적 우수(憂愁)>를 창조해서 19세기 초기문학의 흐름을 낭만주의로 이끈 작가이다.



작성자 : toytreesp
작성일 : 20061120

 
2006/11/20 17:50 2006/11/2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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