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비에토는 세계 최초로 Slow City를 선언한 마을이라 하여 찾아가게 되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제격인 여행지다.
처음 오르비에토역에 내렸을 땐 생각보다 현대화된 주변 모습에 당황했는데, 알고보니 저 멀리 보이는 산 위로 가야하는 것이었다.
기차역 앞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순식간에 정상으로 올라간 후, 버스를 갈아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마을의 중심인 두오모 앞이다.
말로는 엄청 멀고 번거로울 것 같지만 이 모든 것이 5분안에 이루어졌을 만큼 쉽고 가까우며 빠르다.
날이 잔뜩 흐려 은근히 운해를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안개만 있어 뿌옇기만 했다.
운해가 밀려오면 완전 공중도시가 된다던데...T_T

(날짜가 없는 것은 오픈 티켓. 왜 가격이 다른지 당췌 모르겠다; 기차 종류도 같은데;;)


(저 멀리 보이는 산 위로 올라가야 한다. 낮아보이지만 저 위에서 더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아씨지의 세 배 만큼 높다.)

(기차역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다.)


(케이블카에 탈 수 있는 최대 정원은 75명. 티켓을 넣고 들어가면 숫자가 줄어든다.)

(케이블카 티켓)
맨 처음으로 한 것은 두오모 앞 인포메이션에서 각종 지도와 홍보책자를 수거(?)하기.
제법 잘 만들어진 수확물을 얻을 때면 기분이 막 좋아진다.
그리고 두오모 살피기.
두오모에 대한 첫 인상은 '디자인이 있다!'는 것.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선명한 가로 줄무늬가 있는데, 가까이 보니 두 가지 색 벽돌을 가로 무늬로 쌓아올린 것이다.
이 무늬는 오르비에토의 상징이 되기도 해서 기념품이나 지도를 꾸미는 데에도 이용되고 있었다.
분명 오래된 건축물이지만 외관에서 느껴지는 디자인은 시대를 초월할 만큼 현대적이고 세련되었다.
언뜻 피렌체의 두오모와 비교되기도 쉽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피렌체의 두오모가 아름답게 조각된 대리석의 향연이라면 오르비에토의 그것은 '달인의 모자이크' 콜렉션이다.
보통 외부든 내부든 빈 공간에 벽화를 그리기 마련인데 오르비에토의 두오모는 온통 모자이크다.
대리석을 다듬어 무늬를 만든다...는 수준이 아니다.
최순우 선생의 표현을 빌어 '인간으로 태어나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싶은 수준의 정교한 모자이크다.
제일 작은 것은 내 새끼 손가락의 손톱보다 작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정성이냐!






(저거저거, 진짜 작은 조각들이다!)

(끄아아! 집요한 인간들!!)


(정면 그림도 모두 모자이크! 조각이 아닌 색과 그림은 모두 모자이크!)



두오모를 감상한 후엔 열심히 걸으며 오르비에토를 느꼈다.
아씨지와 인접해있지만 분명히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는데, 아씨지가 중세 이탈리아 성지의 모습이라면 오르비에토는 중세 이탈리아 시골의 모습이다.
여행다니면서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많은 마을은 처음 봤다.
마침 일요일이라 성당마다 미사가 한창이었고 작은 시장도 열려 다들 장보기에 바빴다.
사람사는 모습을 제대로 보긴 처음이라 관광객 신경안쓰고 바삐 움직이는 그들이 너무 생동감있게 보였다.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파는 골목은 하나하나가 그림이다.
도자기류가 주종목인듯.
한 가지 반가웠던 것은 이탈리아 전통 기법으로 무늬를 낸 종이 공예품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TV에서 보고 실제로도 보길 바랬는데 이곳에서 발견하다니!
일종의 마블링 염색인데 종이가 물러지지 않고 색감도 튀지 않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품위있는 무늬와 색이라니, 중세 기법이라던데 그 옛날엔 아름답지 않은 게 무어가 있을까 싶다.
그 종이로 다이어리나 수첩, 카드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고 종이 자체를 크게 잘라 팔기도 했다.
포장지보다 작은 사이즈가 10유로가 넘었지만 구기지 않고 가져올 수 있었다면 정말 샀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탈리아 전통 기법의 종이 공예품. 실제로 보면 굉장히 품위있다.)




(이런 식으로 벽에 세워둔 나무 장식이 많다.)

(요건 벤치인데 곳곳에 똑같은 모양이나 나무 장식으로 만들어진 벤치가 많다. 컨셉인듯.)





무엇보다 오르비에토를 대표하는 것은 '산 위에 세워진 마을'이라는 점.
절벽을 따라 높게 지어진 성벽과 그 아래로 보이는 움브리아 지방의 아름다운 모습은 그야말로 오르비에토 최고의 장관이다!
구불구불한 산등성이에 거친 붓터치마냥 남아있는 중세 성들의 모습은 야트막하고 평원으로 이루어진 토스카나와는 또다른 절경이다.
운해가 있었더라면!!!
운해가 있었더라면 절벽 아래로 보이는 것은 오직 구름이라던데!
그렇다면 진정 천공의 마을을 느낄 수 있었을텐데!

(오르비에토의 제일 끝에 다다를 즈음, 앗! 무언가 보인다!)

(오!)

(오오!)

(오오오!)

(저 나무 아래로 한참을 더, 더 내려가야 한다.)


고소공포증이라 차마 성벽에 오래 붙어있지는 못하고 멀찍히 떨어져 풍경을 감상하다가 너무 추워 어디 좀 들어갈까 둘러보았다.
마침 기획 전시중인 전시관이 있어 들어갔는데, 두오모 내부 수리가 끝날 때까지 내부에 있던 작품들을 다른 성당과 전시관에 나누어 전시하는 것이다.
하나의 티켓으로 세 군데 모두 들어갈 수 있는데 이번에도 '달인의 모자이크'를 감상할 수 있었다.
모자이크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뭐 이런 주제라고 우겨도 믿을 정도이니;;;
나무를 이용한 모자이크의 피스도 보통 작은 게 아니었다.
나무엔 결이 있어 조각의 크기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갈라지기 쉽다.
그 정도로 작은 피스를 만들려면 단단한 나무를 써야 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그렇지도 않다.
그야말로 공을 들여 세심하게 한 조각 한 조각 다듬은 것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지만 전시물 중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본 것이 있었으니, 수태고지에 관한 조각상이었다.
홀연히 나타나 수태를 알리는 천사와 천사의 모습에 깜짝 놀라 의자에서 막 일어선 마리아가 1:1 비율(엄밀히 말하면 아주 조금 더 크다)로 조각된 두 개의 대리석상이다.
아아, 이 두 석상을 사진에 담아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하지 말란건 절대 안하는 바른생활 아줌마라서 마음에만 새겨야 했다.
천사의 날개는 너무 아름다웠고 천사를 돌아보는 마리아의 표정은 정말 리얼했다.
모조품이라도 사고 싶었는데 오르비에토는 상술이 없는 마을이다보니 그런 기념품은 팔지도 않았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베르니니의 '테레사의 법열'에 이어 세 번째로 강력 추천하는 작품이니, 이곳에 가는 모든 여행자들이여, 꼭 보라!

(전시회 티켓)
내일이 귀국이라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에 일찍 돌아가기로 했다.
버스로 올라왔던 길을 이번엔 걸어 내려왔고, 잠시 성벽 밖으로 나가보기도 했지만 다리가 후들거려 혼났다.
바들바들 떨면서 감탄하다가 기차 시간이 다 되어 후다닥 되돌아왔다.
하지만 절벽에서 올려다본 성벽은 그야말로 웅장했고 그 옛날 이런 곳에 이런 마을을 세웠다는 사실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성벽 밖으로 나가는 길)


(저 위로 마을이, 저 아래로 움브리아가~성벽과 절벽이 층마다 적절하게 섞여있다.)

(시부모님 드리려고 와인 두 병 질렀다. 하지만...내 와인...내 와인...T_T 가슴아픈 와인 얘기는 다음편에...;)
기차역으로 돌아오니 떼르미니역 매표기에서 확인한 기차가 없다;
매표기에서 시간을 확인하고 그에 맞추어 표까지 샀는데 왜 기차가 없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당황해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5분 뒤에 로마가는 기차가 도착한다며 표를 바꾸어 주었다. (그도 이유는 모르는 눈치다;)
급한 마음에 직원이 준 표를 들고 냅다 뛰어 기차에 올랐는데, 어라, 왜 금액이 더 낮아진걸까;
차액은 어디로?
T_T 나쁜 직원 같으니, 차액을 환불해주었어야지...하긴 계산을 안한 나에게도 책임은 있지만...(괘씸해서 그에게는 이름을 붙여주지 않은 것!)
기차는 완행이라 30분이나 더 걸렸다.
민박엔 주인아주머니만 계셨다.
조용한 상태에서 여유롭게 씻고 일찌감치 가방도 쌌다.
내일은 진짜 돌아가는구나!
다른 일행들은 최후의 만찬이라며 이것저것 사와서 먹느라 바빴지만 나는 숨이 차서 쉬고 있다.
음...통증이 점점 심해지는구나...
오늘의 지출 : 오르비에토→로마 11.90유로(편도/좌석/타임테이블 이상으로 표를 바꾸었는데 바꾼 표의 가격은 6.82유로;)
오르비에토 케이블카 1.80유로(편도 0.90유로, 버스는 무료), 두오모 유물 전시회 5유로
참고 : 오르비에토
로마에서 오르비에토까지는 기차로 한 번에 갈 수 있습니다. (한 시간 소요)
오르비에토행 기차가 있는 것은 아니구요, 피렌체나 베네치아행 기차의 경유지이므로 타임 테이블을 잘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로마 떼르미니역 매표기는 제법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더라구요.
참고 : 오르비에토
이탈리아 중부 오르비에토는 900년 된 성벽에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마을입니다.
우뚝 솟은 언덕(이라지만 산이에요;)에 올라앉은 마을이라 운해(雲海)라도 몰려오면 신비로운 공중도시가 따로 없다네요.
오르비에토는 슬로시티(Slow City)이기도 합니다.
관광객 유치,첨단화,일상의 편리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인간답게 사는 마을이 되겠다'며 1999년, 이탈리아의 다른 몇몇 마을과 함께 슬로시티'를 선언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 자동차들이 다니긴 해요. ^^; 대신 프랑스에서처럼 골목골목을 무자비하게 누비는 운전자는 없습니다.
오르비에토의 두오모는 13세기 성체에 피가 흐른 '볼세나(Bolsena)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 1290년부터 300년에 걸쳐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1263년 보헤미아에서 온 주교와 프라가의 피에트로는 볼세나 산타 크리스티나 교회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중 봉헌되어 있는 성체에서 그리스도의 참다운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성체로부터 진짜 피가 흘러내려 제단 위에 있던 옷이 얼룩졌습니다.
그때부터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오르비에토에서 지냈으며, 그 옷은 바로 교황이 수거해갔습니다.
교황은 그것이 기적임을 인정하고 코르푸스 도미니 교회(성체교회)를 설립했습니다.
돔의 정면에는 축제를 세밀하게 묘사한 33개의 건축물과 152개의 조각품, 90개의 모자이크화가 장식되어 있으며, 68명의 화가들이 공동으로 이태리의 가장 정교한 성당의 전면을 완성했습니다.
건축은 로렌초 마이타니가 설계한 것으로, 전면의 첨탑에는 3부작 그림이 화려하고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그 형태와 양식의 위대한 조화는 이태리 고딕 예술의 걸작품 중의 하나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후진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은 더욱 매혹적이고, 산 브리치오 예배당에는 루카 시뇨렐리의 르네상스 걸작품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ement, 1499~1504)"이 그려져 있습니다.
오르비에토의 다른 볼거리는 주택이나 가게의 지하의 분수 아래에 있는 작은 동굴(grotto)로 1세기에 걸쳐 오일과 와인 저장고나 화장실등으로 사용되어왔습니다.
도시를 떠나는 도중에 볼 수 있는 잊을 수 없는 풍경은 '죽음의 마을'로 불리우는 에트루리아인들의 대규모 공동묘지입니다.
오르비에토 도시 아래로부터 기차역까지 길 위에는 마치 집처럼 석회암으로 지은 매장실들이 있으며, 죽은 이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에트루루리아인들의 문자가 무덤에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화산토가 퇴적되어 형성된 언덕이 있어 포도의 생육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르비에토는 오직 화이트 와인만 생산하고 있는데요, 오르비에토 와인을 너무 사랑했던 교황 그레고리 16세는 유언으로 자기 몸을 땅에 묻기 전 이 와인으로 전신을 깨끗하게 씻어 달라고 했답니다.
움브리아 토속 음식인 가반조 콩 수프와 곁들이면 좋다는군요. 저는 스파게티와 먹었는데 달큰하면서도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이 아주 좋았어요.
와인 사면서도 시음했는데 달큰한 맛이 있는 중간 무게의 와인이랄까요. 화이트 와인은 낯선 세계라 저도 잘 모르지만, 아무튼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이었습니다.
참고로, 오르비에토가 있는 움브리아 지방은 서쪽 토스카나와 비슷한 풍토와 방언으로 인해 토스카나의 자매주로 불리지만 정치적으로는 로마와 훨씬 더 가깝다고 합니다.
작성자 : toytreesp
작성일 : 2006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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